프로이드

정신분석이론 

  • 1무의식과 욕망

    오스트리아의 모라비아에서 유대계로 태어난 프로이트는 세 살 때 가족이 수도인 빈으로 이사를 가서 거의 80년 가까이를 그 도시에서만 살았다. 빈 대학의 의학부에서 공부하다가 1885년 파리로 가서 히스테리를 연구했다. 그런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카타르시스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보고 자유연상법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1900년 《꿈의 해석》이 나온 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고, 프로이트는 이들을 중심으로 국제정신분석학회를 창립했다. 말년에는 턱에 암이 생겨 서른세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사랑하는 손자가 죽자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결국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런던에서 사망했고, 그가 평상시 좋아했던 그리스의 항아리에 담겨 그곳에 묻혔다. 

    그의 정신분석학은 단순히 의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철학 · 심리학 · 문화이론 · 사회이론으로 크고 넓은 체계를 갖춘 세계관이 되었다. 이는 달리나 피카소의 그림,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1)의 소설, 유진 오닐2)의 연극 등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주요한 저서로는 《꿈의 해석》 이외에도, 《히스테리 연구》 《정신분석 입문》 《자아와 이드》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의식과 욕망, 프로이트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2008. 7. 15., 평단문화사)인용

  • 1무의식의 표현

    무의식(無意識)이란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꿈이나 정신분석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의식화하지 않는 의식’을 말한다. 이 무의식의 발견이야말로 프로이트의 커다란 업적인데, 그는 이 무의식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즉 무의식이 실수 · 꿈 · 강박행위3)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행위의 당사자가 자신의 행위 동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은 인간의 성 충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일종의 심리적 행위다. 첫째, 의도적인 망각으로 일부러 잊어버리는 경우다. Y가 어떤 여성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했는데, 그의 친구 X가 바로 그 여성과 결혼했다. 이후로 Y는 자기 친구인 X의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실수일까? 그것은 실수가 아니고, Y가 X를 자기도 모르게 원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불쾌한 경험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그와 관련된 것을 잊어버리는 실수로 나타난 것이다. 

    또 다른 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책 한 권을 사 주었다. 남편은 잘 읽겠노라고 건성으로 말하고는 어디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책이 생각나서 뒤져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병이 났고, 며느리인 아내는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간호했다. 

    이 일로 남편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마음으로 자기 방에 돌아와서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책상에 다가가 무심코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책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즉 그때까지 망각을 일으켰던 무의식적인 동기, 아내를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과거에 불쾌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들이 실수를 일으키는 경우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어느 일정한 단어를 계속해서 잘못 읽는다. 그런데 나중에야 그 글자는 자기가 몹시 싫어하거나 불쾌한 기억을 가진 단어였음을 깨닫게 된다. 

    꿈은 옛날부터 인간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물론 꿈은 생리학적으로는 잠을 연장시키는 수단이다. 하지만 무의식이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소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의식과 욕망, 프로이트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2008. 7. 15., 평단문화사)인용